사도직
복지
복지(음성본원)
예수의꽃동네 형제회 • 자매회 방문을 환영합니다.
무극성당에서 오웅진 신부가 죽어가는 행려병자를 사제관으로 맞아들이며 시작된 꽃동네 복지는 1976년 11월 용담산 아래 사랑의 집을 짓고 걸인 18명을 맞아들이며 시작되었다. 이어 성당 인근의 노후 한 주택을 사들이며 가족 분들을 모시고 이후 금왕읍 용계리 소망의 집을 짓고 당시 결핵 환자들의 요양을 하게 되었다.
이후 현 음성 꽃동네의 위치인 음성군 맹동면 소 속리산 자락에 자리를 잡고 집을 지으며 꽃동네는 더 많은 행려병자를 맞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꽃동네가 맹동면에서 가장 먼저 준공된 사랑의 집(구 본동)부터 시작해서 이어 정신요양원인 환희의 집, 여자 노숙인시설인 애덕의 집, 노인요양원인 구원의 집, 당시 여자정신요양원인 요한의 집, 장애인요양원인 희망의 집, 아동시설 등 연차적으로 집을 지어 나났다. 당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행려병자가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인곡자애병원
준공일 : 1988년 10월 21일
소재지 : 음성군 맹동면 꽃동네길 37
꽃동네가 음성군 맹동면에 자리를 잡고 요양원이 늘어나자 모시는 가족 분들도 많아졌다. 예나 지금이나 꽃동네 가족 분들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질병들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행려병자 한 분이 입소를 하면 정신질환자이면서 장애인인 경우도 있고 또 다른 여러 가지 질병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초기 꽃동네는 수원에 있는 성 빈센트 병원 및 전국의 병원을 찾아다니면서 행려병자들이 치료를 부탁 했어야 했다. 행려병자를 데리고 병원을 찾아갈 때마다 병원에서는 오웅진 신부에게 “이번이 마지막”임을 말하며 병원의 어려움을 말했었다.
음성꽃동네 가족 분들이 천여 명이 넘어가고 외부 병원을 전전하며 치료받는 것도 한계에 다다르자 어떻게 하면 꽃동네에 병원을 개원할 수 있을까를 기도하며 노력하였다.
오웅진 신부는 꽃동네에 병원이 필요함을 만나는 사람마다 이야기하며 도움을 요청하고 다녔다. 이후 은인의 도움으로 당시 진로그룹 부사장이던 장진호 부사장으로부터 연락이 왔고 꽃동네에 병원을 지어 헌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장진호 부사장의 뜻은 곧 이루어졌다. 꽃동네 병원은 1988년 준공 되었고 ‘인곡자애병원’이란 명칭으로 1989년 4월 27일 개원하였다. 인곡자애병원이 개원하면서 외부병원을 전전하던 꽃동네 가족들의 치료는 더 좋은 환경과 치료를 할 수 있게 되었다.